청계천 광통교

10코스 역사의 길
종로라는 역사책, 마지막 페이지의 이야기

(안내) 역사작가 박광일
(배역) 박광일(역사작가)

광통교는 옛 모습을 살려서 복원한 다리입니다. 1910년, 전차가 광통교 위로 다니게 되면서 새 다리 아래 묻혔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할 때 다시 광통교 난간만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리는 길 아래 그대로 묻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며 옛 다리를 발굴하고 그 위에 난간을 새로 설치하면서 지금의 다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통교라는 이름은 이 동네 이름 광통방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처럼 실제로도 큰 규모의 다리였습니다. 길이가 약 12미터, 폭이 약 15미터로 길이보다 폭이 넓은 다리였으니 이름에 들어간 넓을 ‘광’ 자와 어울리는 다리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처럼 돌로 지은 거창한 다리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흙으로 다리를 놓았는데 태종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태종은 이 다리를 놓을 때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 석물을 가져다 썼습니다. 신덕왕후는 방번과 방석의 친모였는데요, 1397년 승하하자 태조는 현 덕수궁 일대 정동에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해인 1398년,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1400년, 정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태상왕이던 태조 이성계가 1408년 승하하자 구리 동구릉 자리에 건원릉을 만든 뒤, 신덕왕후의 정릉은 당시로서는 먼 곳인 사을한,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정릉에 쓰인 석재를 광통교 건설에 쓴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볼 수 있는데요, 광통교 곳곳에 있는 화려한 조각이 들어간 석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로 병풍석에 있던 인물상인 석각 신장상 장식과 금강저 또는 영저라 부르는 삼지창 모양의 장식, 그리고 방울인 영탁인데요, 어떤 것은 거꾸로 뒤집힌 채 석축의 일부 부재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통교에는 세 가지 이상의 역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태종이 광통교를 만든 역사, 두 번째는 일제시기와 현대에 이르러 광통교를 길 아래 묻은 역사, 세 번째는 다시 청계천 아래 광통교를 복원한 역사입니다. 이처럼 옛 역사를 찾아내는 과정도 중요한 역사라는 사실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광통교를 살펴보신 뒤에 다음 장소로 가시면 됩니다.

다음 장소는 청계천을 나가서 만나는 곳인데요. 광통교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거대한 조각인 스프링을 볼 수 있습니다. 청계광장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방향을 북쪽, 곧 종로와 광화문 광장 쪽으로 바꾸어 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으로 가기 직전, 교보빌딩 앞에 있는 고종즉위 40년 기념비전, 줄여서 기념비전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 앞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겠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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