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코스 역사의 길
종로라는 역사책, 마지막 페이지의 이야기
(안내) 역사작가 박광일
(배역) 박광일(역사작가)
자, 이제 종로모던길 10코스, 역사의 길 마지막 장소인 광화문광장입니다. 처음 오간수문을 출발해 여기까지 오면서 전태일 열사도 만났고요, 광장시장의 북적거림, 그리고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 세운상가, 또 청계천의 역사와 함께 현대사의 영역이기도 한 수표교와 광통교, 그리고 발전한 서울의 모습을 상징하는 3.1빌딩, 그리고 고종즉위 40년을 기념하는 비를 보았습니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역사의 길이라고 하면 뭔가 일목요연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찾아보거나, 혹은 일정한 주제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간도 달랐고 성격도 조금 달랐던 유물, 혹은 장소가 이어졌던 길이었습니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통일된 것이라면 청계천이라는 공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광화문광장, 그리고 주변을 한번 살펴보시죠. 지금 눈에 띄는 것으로도 하나의 이미지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의정부 터 발굴 장소, 무신인 이순신 장군, 한글 창제로 기억하는 세종대왕,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정부 기관과 박물관, 호텔과 여러 기업의 건물.
그런데 이들을 모아놓으면 역사가 됩니다. 처음 조선이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1394년, 이제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을 해 보시죠. 궁궐이 생기고 6조 거리에는 관청이 들어섭니다. 평화로운 시기가 지나며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으로 황폐해진 모습, 그리고 폐허가 된 경복궁을 찾아온 영조의 행렬, 바쁘게 움직이는 6조와 한성부의 관리들. 그리고 다시 복원된 경복궁과 그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러 온 동학교도와 선비들, 또 어지러운 근대의 여러 장면과 함께 갑자기 경복궁을 막아선 조선총독부 건물, 그리고 헐려 나가는 조선총독부.
이제 상상을 멈추시고 다시 광화문 광장을 보시죠. 이렇게 많은 역사를 담은 곳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기는 쉽지 않습니다. 종로는 역사의 켜가 겹겹이 쌓여있는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 위에 사람들이 수를 놓듯이 삶의 흔적을 한 땀 한 땀 남겨놓았습니다.
종로는 두꺼운 역사책과 같은 곳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책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근대와 현대 편을 들춰 본 것입니다. 그 흔적 가운데 일부를 찾아보았으니 다른 역사는, 다른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어느 시대, 어떤 주제의 역사도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종로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광화문 광장은 조선의 중심, 그리고 대한민국의 중심입니다. 백악과 인왕, 낙산과 목멱이 만들어낸 한양의 중심이었으며 그 한양에서 서울이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광장을 보시죠. 인공적인 것 이전에 있던 자연을 찾아보세요. 인왕산이며 백악, 그리고 멀리 북한산과 그 안의 공간이 보이실 겁니다. 600여 년의 유서 깊은 역사, 그리고 지난 150여 년의 뜨거웠던 역사의 중심 공간입니다. 그런 특별한 곳에 여러분이 서 계신 것입니다.
이제 종로모던길, 10개의 코스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세검정에서 출발해 창의문, 무계원에서 마무리한 1코스, 윤동주 문학관에서 시작해 배화여자대학교, 황학정에서 마무리한 2코스, 딜쿠샤에서 시작해 돈의문박물관 마을에서 마무리한 3코스, 방정환 선생 태어난 곳에서 시작해 조선어학회 터에서 마무리한 4코스, 헌법재판소에서 시작해 기기국 번사창과 북촌 한옥마을에서 마무리한 5코스, 중앙고등학교에서 시작해 탑골공원에서 마무리한 6코스, 탑골공원에서 시작해 단성사 앞, 좌포도청 터에서 마무리한 7코스, 대한의원에서 시작해 옛 대학로에서 마무리한 8코스, 이화동에서 시작해 동묘, 백남준 기념관에서 마무리한 9코스, 그리고 오간수교에서 시작해 이곳 광화문 광장에서 마무리한 10코스까지 종로 곳곳을 개성 넘치는 안내자와 함께 걸으며 살펴보았습니다.
길고 또 어렵기도 한 길이었습니다. 종로모던길, 10개의 코스를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다음에 또 좋은 곳에서 좋은 모습으로 뵙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