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봉제거리

9코스 인생의 길
위대한 일상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안내) 배우 강애심
(배역) 노태영(봉제사,의류사업가)

창신동 봉제거리는 봉제거리 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말 그대로 이 길이 하나의 박물관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지요. ‘드르륵, 드르륵’ 미싱 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오토바이 소리. 봉제거리 어느 곳에서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어요. 그래도 제가 일하던 1990년대에 비하면 지금은 조용한 편이죠. 한때 3,000여 곳이었던 봉제 공장들이 지금은 900여 곳 정도만 남았다고 하더군요.

창신동에 본격적으로 봉제 공장들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였어요. 처음에 봉제 공장은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었죠. 거기가 우리나라 최대 의류 시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의류 수출이 늘고 평화시장에 도소매 상점이 점포 규모를 확대하면서, 봉제 공장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평화시장에서 멀지 않은 창신동이었죠. 그전까지 창신동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었는데요, 나중에는 생활하는 곳이자 일터가 되었던 것이지요.

창신동에는 사는 집에서 봉제 작업을 하는, 그러니까 한두 명이 일하는 가내수공업 방식부터 10명 남짓의 노동자가 일하는 소규모 봉제 공장, 의류 제작 전 과정이 한 곳에 이루어지는 종합 공장까지 다양한 형태의 봉제 공장들이 있어요.

보통 디자인한 옷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다섯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디자이너가 그린 스케치를 옷으로 만들 수 있게 옷본을 만드는 ‘패턴’, 옷본에 따라 옷감을 자르는 ‘재단’, 재단된 원단을 재봉틀로 이어붙이는 ‘재봉’, 손바느질로 안감, 주머니, 단추를 다는 마무리 작업인 ‘마도메’, 마지막으로 실밥을 정리하고 다림질을 하는 정리 작업인 ‘시야게’지요. 하하, 본의 아니게 일본말이 나왔는데 다들 이렇게 쓴답니다. 마도메는 손작업, 시야게는 완성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워낙 입에 붙어서요. 양해 부탁드려요.

창신동 봉제거리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옷을 생산하기 위해 각각의 작업이 분업화, 전문화되어 있지요. 디자인이 오전에 도착하면 그날 저녁 완성된 옷으로 만들어지는 놀라운 곳이 이곳 창신동입니다.

봉제거리를 걷다가 미싱 소리가 나는 곳이 있다면 재봉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스팀 연기가 올라온다면 그곳은 틀림없이 완성 작업장이지요. 아, 역시 우리말로 바꾸니까 어색하긴 합니다. 하하.

지금 우리가 와있는 봉제거리는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니 하청을 받아 재봉 작업을 하는 곳들이에요. 주문을 받아 전체 공정을 담당하는 공장들은 큰길가에 있지만, 일부 작업을 하는 곳은 창신동에서도 깊숙한 안쪽에 있어요. 보통은 주택의 지하층과 1층에는 소규모 공장이, 2층에는 주거 시설이 있답니다. 서민들의 소중한 일터이자 일상을 이어가는 곳이죠.

재봉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무거운 원단을 다루는 재단사는 대부분이 남자들이었고,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는 미싱사는 대부분 여자들이었어요. 제가 일할 때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봉제 일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때는 대부분의 공장이 저녁 8시에는 작업이 끝났어요.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14시간씩 재봉틀을 돌렸고 철야 작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어찌 버텼나 모르겠어요.

가족 생각, 혹은 수출 역군이라는 사명감으로 젊은 시절 대부분을 작업장에서 베이고 찔리고, 또 실 먼지를 마시며 열심히 일한 그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분들 가운데 많은 분이 지금도 같은 이유로 그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죠. 저 역시 이곳에서 미싱 일을 하며 언젠가는 직접 옷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젊은 시절의 저를 만난다면 어깨를 두드려주며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

지금은 브랜드 의류 제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인건비가 싼 외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들여오는 바람에 창신동의 모습도 많이 변했어요. 그래도 패션 1번지 동대문 시장의 배후 생산지로 대한민국의 의류 산업을 이끌었고, 또 이끌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만큼은 여전히 살아있는 곳이에요.

자, 이제 이곳을 떠나 또 다른 인생의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창신동의 골목길은 찾아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일제시기에는 이곳에 도시형 한옥이 들어섰고요, 6.25 전쟁 이후에는 피난민들이 지은 판잣집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불량 주택을 철거한 자리에 다세대, 다가구 주택, 아파트까지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거미줄같이 복잡한 길이 생긴 거죠. 이제 찾아갈 곳은 낙산의 경사면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길이어서 두 다리에 불끈 힘을 주셔야 할 겁니다.

자, 우리 목표는 채석장 전망대입니다.

봉제거리에서 채석장 전망대로 가는길에 구불구불한 ‘회오리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재미난 놀이터가 나와요. 2019년 문을 연 ‘산마루 놀이터’입니다. 이곳이 봉제 산업의 중심지라는 지역적 의미를 담아 거대한 골무 모양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참 이색적이죠. 힘들게 올라왔으니 여기에서 잠깐 쉬어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잠시 쉬셨다면 다시 전망대를 향해 걸어보세요. 낙산 가장 높은 곳에서 채석장 전망대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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