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장 전망대

9코스 인생의 길
위대한 일상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안내) 배우 강애심
(배역) 노태영(봉제사,의류사업가)

이제 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보세요. 남쪽으로 동대문에서부터 낙산 성곽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서울의 풍경을 만났나요?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어요. 우리가 걸어 올라온 이곳은 ‘창신동 절벽 골목’이라고 불러요.

절벽 골목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북쪽 풍경을 보면 알 수 있죠. 건너편으로 보이는 숭인동 동망봉이 흉물스럽게 잘려 나간 곳, 움푹 파여서 절벽이 된 곳이 보이지요? 일제시기 화강암 채취를 하면서 생겨난 곳입니다. 우리가 걸어 올라온 낙산 역시 동망봉 쪽으로 채석장이 만든 절벽이 있답니다.

1910년 일제는 국권을 침탈한 뒤, 식민지 통치 기구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새로 지을 계획을 세웠어요. 남산의 총독부 건물이 좁다고 느꼈기 때문이었겠죠. 새로운 총독부 건물은 경복궁 안쪽에 일본의 권위가 최대한 드러나도록 거대한 서양식 건축물로 지었어요. 이를 위해 압록강 인근의 낙엽송, 경기도와 황해도의 대리석, 한강의 모래와 자갈을 비롯해 20만 개의 화강암이 들어갔죠. 바로 이곳이 그 화강암을 채취한 곳입니다.
1924년에는 아예 이곳을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지정한 뒤, 날마다 발파를 이어가며 화강암을 채취했다고 해요. 그렇게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완공되었고, 조선은행, 서울역, 경성부 청사도 이곳에서 화강암을 채취해서 지었죠.

창신동과 숭인동의 채석장은 광복 이후에도 얼마 동안 쓰였어요. 그러다가 1960년 폐쇄된 이후 절개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죠. 그곳을 지금은 절개지 마을 혹은 절벽 마을이라 불러요.

서울의 한복판, 종로에 이런 일제 침탈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또 이렇게나 올망졸망 어찌 보면 아슬아슬한 모습의 집을 짓고 삶을 이어 왔다는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더욱 많고요.

이곳에서 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풍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채석장 흔적, 그리고 반대편의 고층 빌딩이 만드는 마천루. 두 개 모두 지금 종로, 서울의 모습이겠죠?

다음으로 우리가 갈 곳은 아래쪽 도로 옆에 있는 창신초등학교입니다.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으로 ‘종로 종합 사회복지관’이 보일 거예요.

그 앞으로 난 길을 따라 큰길까지 쭉 내려가다 보면 창신초등학교가 나와요. 길이 그리 넓지 않고 경사도 불규칙해요. 천천히 그리고 조심해서 내려가는 거 잊지 마세요.

창신초등학교 정문 옆 벽면을 보면 ‘원흥사 터’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어요. 거기에서 말씀을 이어갈게요.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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