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벼룩시장

9코스 인생의 길
위대한 일상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안내) 배우 강애심
(배역) 노태영(봉제사,의류사업가)

동묘 담벼락을 따라 줄지어 있는 노점들이 보이나요? 얼핏 둘러봐도 정말이지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어요. 새 물건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고 물품들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죠.

이곳에 시장이 처음 생긴 것은 꽤 오래전 일이죠. 동묘 벼룩시장 아래쪽으로 있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그 내력을 찾을 수 있죠. 영도교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헤어진 곳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단종은 나중에 세조가 되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에서 쫓겨난 왕이죠. 단종과 정순왕후는 영도교에서 헤어진 뒤, 단종은 영월로 가고 정순왕후는 숭인동에 초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종은 영월에서 17살 나이로, 정순왕후는 숭인동에서 82살 나이로 생을 마감했으니까, 이곳이 서로의 얼굴을 본 마지막 장소가 된 거지요. 그래서 다리의 이름도 영영 이별했다고 해서 영 이별다리, 영 건넌 다리, 영도교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순왕후는 세조의 도움을 거부하며 어렵게 생활했다고 해요. 근방의 여인들이 정순왕후를 돕기 위해 이곳에서 채소시장을 열었다고 해요. 남자들은 들어갈 수 없어서 여인 시장이라고 불렸답니다.

이러한 내력을 지닌 곳에 다시 시장이 생긴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지금의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대부터 상인들이 모여들며 생겨난 중고 만물 시장이지요. 가전제품, 시계, 책, 공구류, 신발에 다양한 종류의 의복까지, 정말 없는 게 없이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이에요.

특별한 물건 몇몇을 제외하면 만원으로도 여러 가지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장이지요.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공사로 근처의 황학동 벼룩시장이 축소되고, 터전을 잃은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이게 되면서 더 많은 상인으로 붐비게 되었다고 해요. 평일은 그래도 한가한 편이지만 주말이면 상인들과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지요.

벼룩시장이 기대고 있는 동묘는 중국의 관우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입니다. 임진왜란 때 한양에 머물렀던 명나라 장수의 권유로 남관왕묘와 동관왕묘를 짓고 이후 고종 때 북묘, 서묘까지 지어졌다고 해요.

일제 시기에 동묘만 남겨 놓아서 이제 관우의 사당은 여기에서만 볼 수 있죠. 공자를 모시는 성균관을 문묘라 하고 관우를 군사의 신으로 모셔 무묘라 했어요. 시끌벅적한 벼룩시장과 달리 동묘 안은 사당의 경건함이 느껴지는 곳이에요. 조선과 중국의 장인이 힘을 합쳐서 지은 사당 건물이라서 한국 분위기, 중국 분위기가 모두 느껴집니다.

자, 그럼 이제 동묘 벼룩시장을 떠나 인생의 길 다음 목적지로 떠나볼까요? 동묘앞역 6번 출구로 가지요.

6번 출구 앞 큰길은 ‘박수근 길’이라고 부른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가 박수근이 창신동 393-16(지봉로11) 살았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집은 사라지고 지금은 박수근의 집터였음을 알려주는 조형물과 표석을 만날 수 있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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