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원

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이곳은 함춘원 안의 마두산 언덕이오. 언덕 위, 빨간 벽돌 건물이 바로 대한의원이오. 건물의 맵시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소. 흔히들 이 시기에 지은 벽돌 건물은 모두 외국에서 온 사람을 위한 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하지만 이 건물은 1907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 황제께서 설립하도록 하여 순종 황제의 칙명으로 문을 연 근대식 국립의원, 지금 표현으로 하면 국립병원이었소. 지금도 본관 건물의 규모가 만만치 않지만, 처음 지었을 때는 본관을 포함하여 모두 7동의 병동과 해부실, 의학교를 갖춘 대규모의 의원이었소.

아, 물론 대한의원이 우리 조선의 첫 서양식 의원은 아니었다오. 앞서 고종 임금께서는 1885년 제중원이란 병원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소. 제중원을 짓기 1년 전, 그러니까 1884년에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 사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 때 많은 사람이 칼에 맞아 죽거나 다쳤소.

민영익 역시 여러 곳에 칼을 맞아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렌이 치료한 덕분에 살아났소. 서양의 문물에 관심이 많은 고종 임금은 알렌의 건의로 홍영식의 집터에 광혜원, 아니 바로 이름이 고쳐졌으니 제중원이 맞겠소. 제중원이란 서양식 의원을 짓도록 한 것이오.

하지만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제중원은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없었소. 대신 외국 선교사가 세운 의학 학교의 의원이 되어서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소.

이런 가운데 고종 황제께서는 1907년에 국립병원인 광제원, 의학교육기관인 의학교와 부속병원, 빈민 치료기관인 대한국적십자병원을 모두 통합해, 이곳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근대식 병원 대한의원을 설립하도록 하신 것이오.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의학 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이었소. 그리고 1908년, 순종 황제의 칙령으로 대한의원이 문을 열었소.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원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의원의 역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소. 1910년에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기 때문이오.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이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의학교는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 강습소가 되었다가 경성의학 전문학교로 바뀌게 되었소. 이후 조선총독부 의원이 경성의학 전문학교의 부속의원이 되고 경성의학 전문학교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통합되어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 것이오.

과정이 다소 복잡한 듯 들리겠지만 결론은 대한제국의 국립 대한의원이 대한민국의 국립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소. 황제의 칙령으로 생겨난 의원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역사의 흐름이란 것이 참 대단하지 않소?

@등록기관 : 종로구

내 주변 관광지

닫기
위치 목록으로 보기 현 위치 재검색

내 주변 관광지

지도보기
  • 관광지
  • 이야기

지역선택

닫기
전국
  • 0 관광지
  • 0 이야기
현재지역
  • 전국
  • 0 관광지
  • 0 이야기
위치

전체듣기

재생 목록에 이야기가 추가된 후 재생됩니다.

취소

확인

앱 종료 후 재구동 시 변경됩니다.
언어를 변경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글자크기 선택

취소

개선의견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검토 후 신속하게 처리 하겠습니다.

확인

공유

URL 복사

아래 URL을 두 번 터치하거나 길게 눌러서
전체 선택 후 복사해주세요.

확인

확인

취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