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홍화문

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하셨소. 이곳이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오. 창경궁의 역사는 처음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건설한 것에서 시작하오. 그리고 성종 때에는 할머님, 어머님이신 내전 어른 세 분을 위해 궁궐을 크게 지었으니 이때 창경궁의 이름을 갖게 되었소.

창경궁은 창덕궁의 동쪽에 지형의 모습을 살려 건물을 지었소. 그래서 다른 한양의 궁궐과 달리 정전과 궁궐의 문이 동향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오. 또한 창경궁은 백악에서 흘러 내려온 산줄기인 응봉 자락 아래에 창덕궁과 함께 있어서 두 궁궐을 함께 동궐로 부른다오. 실제로 하나의 궁궐처럼 썼으니 주로 왕실의 가족이 생활하는 내전의 역할을 담당한 궁궐이었소.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에 탔소. 광해군 때 궁궐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경복궁이 빠졌으니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이 경복궁처럼 높고 귀한 궁궐이 되었소. 그러자 옆에 있는 창경궁 역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오. 조선 후기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숙종과 영조, 정조 임금님은 물론 인현왕후, 희빈 장씨,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오.

아마도 정조 임금님께 창경궁은 더욱 특별한 곳이었을 것이오. 친부이신 사도세자와 정조 임금 자신이 모두 창경궁에서 태어나셨으니 말이오. 그리고 조선의 왕실에서 큰 비극으로 손꼽히는 사도세자의 죽음 역시, 정조 임금이 11살 되던 해에 창경궁 문정전에서 일어났으니 말이오. 할아버지인 영조의 말을 거스를 수도, 친부인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그칠 수도 없었을 정조 임금의 마음은 차마 헤아려보기도 어렵소.

그런 정조 임금이 즉위 후 창경궁 북쪽 담장을 허물어 아버지의 사당인 경모궁으로 통하는 문을 만드셨소. 그리고 창경궁의 문은 매월 찾아뵙겠다는 뜻의 ‘월근문’, 경모궁의 문은 매일 바라본다는 뜻의 ‘일첨문’으로 이름 지으셨다오. 경모궁이 없어지면서 일첨문도 사라졌지만 월근문은 창경궁 주차장 위쪽에 남아있어 성균관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확인하고 가도 좋을 것이오.

자, 다시 길을 이어가 보겠소. 이번에 향할 곳은 성균관이오. 창경궁 담장을 따라 성균관대학교 사거리까지 걸어가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성균관대학교 들어가는 길에 있는 성균관에 도착할 것이오.

@등록기관 : 종로구

내 주변 관광지

닫기
위치 목록으로 보기 현 위치 재검색

내 주변 관광지

지도보기
  • 관광지
  • 이야기

지역선택

닫기
전국
  • 0 관광지
  • 0 이야기
현재지역
  • 전국
  • 0 관광지
  • 0 이야기
위치

전체듣기

재생 목록에 이야기가 추가된 후 재생됩니다.

취소

확인

앱 종료 후 재구동 시 변경됩니다.
언어를 변경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글자크기 선택

취소

개선의견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검토 후 신속하게 처리 하겠습니다.

확인

공유

URL 복사

아래 URL을 두 번 터치하거나 길게 눌러서
전체 선택 후 복사해주세요.

확인

확인

취소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