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성고등학교

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4.19의 횃불 바로 여기에서”

동성고 학생들의 4.19혁명 참여를 기념하는 비석이라오. 고등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했다니, 그것도 독재에 맞선 혁명이라니 놀라울 뿐이오.

1960년 3월 15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엄청난 부정이 있었소. 당시 선거는 야당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의 사망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당선은 확실했소. 하지만 여당인 자유당은 85세로 고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유고에 대비하기 위해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에도 사활을 걸고 있었던 것이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해서는 아니 될 일을 했소. 바로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오.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보다는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여러 면에서 우세했기 때문이오. 이러한 부정선거는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었소.

선거 결과는 대통령 이승만 88.7%, 부통령 이기붕 79%의 득표율로 당선이었소. 하지만 분노한 국민은 선거 날부터 선거 무효를 외쳤소. 이 가운데에는 마산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김주열 학생도 있었소. 그 학생은 3월 15일 시위에서 실종되었는데, 4월 11일,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부두 앞 바다에서 발견되었소. 여기에 분노한 마산 시민은 다시 시위를 크게 일으켰고 나라 전체가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것이오.

이러한 분위기는 서울까지 전달되어 4월18일 고려대 학생들은 3.15 부정선거와 자유당의 독재를 규탄하며 평화 시위를 벌였소. 그러나 정부는 정치 깡패를 동원해 대학생들을 습격한 것이오. 이 소식은 신문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졌소. 운명의 4월 19일, 서울의 여러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으니 동성고도 그 학교 가운데 한 곳이었소.

4월 19일 11시, 동성고 학생들도 교문을 나섰소. 장면 부통령 후보가 오랫동안 동성고 교장으로 재직했었기에 학생들의 분노는 어느 곳보다 컸다고 하오. 동성고 교사들도 학생들 옆에서 걸으며 그들을 보호하고 그 뜻을 지지해 주었소.

이렇게 여러 곳에서 모인 학생과 시민이 한뜻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향했다고 하오. 그리고 그곳에서 대치하던 중 경찰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이렇게 시작한 혁명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자유당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으니 학생, 시민이 목 놓아 외친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이었소.

왕이 나라의 주인인 조선에서 살던 나에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놀랍기만 한 것이오. 처음에는 마냥 대단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민주주의는 국민이 지키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리고 그 앞에 학생들이 있었다니 더욱더 놀라운 일이었소. 배움의 길은 단순히 배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듯하오. 그 실천 역시 배움의 과정이 아니겠소. 학생들의 희생 앞에 마음이 숙연해지는구려.

자, 다시 길을 가보도록 하겠소. 대학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안창호 선생의 동상을 만나게 될 것이오.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소.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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