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시 표석


7코스 혁명의 길
종로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움직임, 혁명의 길 이야기

(안내) 방송인 정재환
(배역) 박승필(영화제작자, 광무대/단성사 대표)

사복시 표석을 찾으셨습니까? 네. 표석에 적힌 것처럼 사복시는 조선시대에 말, 그리고 마구와 관련된 일을 담당하던 관청입니다. 바로 이 공간에서 기억해야 할 두 개의 혁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 건국이고 다른 하나는 4.19혁명입니다.

조선은 건국 과정에서 ‘혁명’이란 말을 썼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쓰는 뜻과는 달랐습니다. 여기서 혁명은 천명으로 왕조가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왕실이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니 성이 바뀐다는 의미의 ‘역성’을 붙여서 역성혁명으로 불렀습니다. 이런 논리를 통해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실제로 고려와 조선은 나라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귀족의 나라에서 사대부의 나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역성혁명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인데요, 그의 집이 있던 곳이 바로 이 사복시 자리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신입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고종 때 복권이 되기 전까지는 줄곧 반역자였습니다. 정도전을 반역자로 만든 것은 태종입니다. 정도전은 태조의 뒤를 이을 세자로 방석을 선택했고, 이에 반발한 태종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이 사건으로 정도전과 방석은 죽임을 당하고 태조는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혁명까지는 아니었지만, 막 건국한 조선의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태종은 정도전의 집이 있던 곳에 사복시를 설치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치와 권력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또 잔인하기도 합니다.

4.19혁명 때, 비극적인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수송국민학교, 지금 표현으로는 수송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어린 초등학생이었지만 직감적으로 혁명이 옳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시위대를 본 초등학생은 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수송초등학교 6학년 학생 전한승입니다. 전한승 어린이는 열사의 이름으로 지금 국립 4.19민주묘지 195번 무덤에 잠들어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어처구니없이 친구를 보낸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은 현수막을 만들어 시위에 나섰습니다. 현수막에는 ‘국군아저씨들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우리는 민주 정의를 위해 싸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이 희생당하고 또 다른 어린 학생이 시위에 나섰던 겁니다. 4.19혁명 당시 전한승 어린이 말고도 4명의 초등학생이 서울과 부산에서 총상을 입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 이제 다음 장소로 가겠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영풍문고 앞, 전봉준 장군 동상입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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