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사 터


6코스 3.1운동 길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민주주의의 시작 3.1운동 이야기

(안내) 배우 박형준
(배역) 송계백(일본의 유학생 독립운동을 국내에 전한 대학생)

여기는 한용운 선생이 운영하던 출판사인 유심사가 있던 곳입니다. 한용운 선생이 3.1운동 당시 머물던 곳이기도 하죠. 이곳으로 최린 선생이 한용운 선생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천도교 측에서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서기로 했지만,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천도교 혼자 끌고 나가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회 명망가를 여러 사람 접촉했습니다.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나면 중심에 명망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거죠. 당시 대한제국 시절 유명 인사, 혹은 고위 관료들과도 접촉했습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사람들인데요, 예를 들면 박영효, 이상재, 윤치호, 김윤식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소극적이었죠. 오히려 윤치호는 ‘무슨 무슨 운동을 한다고 독립이 되겠냐?’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숨을 쉬며) 하, 윤치호 선생이야 영어도 잘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의지를 담아) 그렇지만 독립운동이 된다고 하고 안 된다고 안 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옳으면 하고 옳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죠. 그러나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은 최대한 찾는 것이 맞죠.

이때 천도교 측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독교 측에서도 독립운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곧 최린 선생이 주도가 되어 기독교 측의 이승훈 선생을 만나 함께 할 뜻을 정했습니다.


이승훈 선생은 정주에 있던 오산학교의 설립자이시기도 하면서 기독교 안에서 장로교단, 감리교단을 설득하기 위해 함태영 선생과 함께 많은 힘을 들였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천도교 측은 기독교 측에 독립운동 자금 5천원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자, 이렇게 되자 독립운동의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불교 측도 참여한다면 훨씬 좋은 모습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비록 늦게 참여했으나 한용운 선생의 열정은 대단했죠.

게다가 이미 독립운동에 앞장서 온 백용성 스님의 참여로 우리가 알고 있는 3.1운동 민족대표의 모습이 갖춰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종교가 민족의 문제 앞에서 하나로 뭉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무엇보다 민족 종단인 천도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한 불교가 하나로 힘을 합쳤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역사에 꼭 기록해야 할 사건입니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정말 많습니다만, 이제 다음 장소로 올라가서 3.1운동이 시작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여운형 선생의 집이 있던 곳입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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