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선생 집터


6코스 3.1운동 길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민주주의의 시작 3.1운동 이야기

(안내) 배우 박형준
(배역) 송계백(일본의 유학생 독립운동을 국내에 전한 대학생)

여기는 여운형 선생이 살던 집이 있던 곳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3.1운동 당시 여운형 선생은 상하이에 계셨으니까, 직접 관련이 없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을 얘기할 때, 여운형 선생을 빼고 얘기하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그 유명한 ‘민족자결주의’가 3.1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그 의미를 파악하려면 여운형 선생의 활약을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얘기는 3.1운동 이전 1918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평화를 위한 14개조 조항을 발표합니다. 여기에 민족자결주의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민족자결주의는 말 그대로 자기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윌슨은 새롭게 떠오르는 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미국 역시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해 건국한 나라입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독립운동가는 많았으니 여운형 선생 역시 그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1918년 11월, 윌슨의 친구이자 특사인 찰스 크레인이 상하이를 방문해 다시 한 번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밝혔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찰스 크레인과 면담을 했고, ‘조선이 독립운동을 위해 대표를 파견하여 조선의 사정을 알리고 싶은데, 대표 파견에 문제가 없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찰스 크레인은 긍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에 도움을 청했지만 어떤 나라도 우리 민족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다른 태도를 보인 겁니다.

용기를 얻은 여운형 선생은 파리강화회의에 우리 대표를 파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만, 우리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별도의 이름이 필요해 ‘신한청년당’을 만들어서 그 대표로 김규식 선생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확인할 방법이 김규식 선생이 가지고 가는 문서 외에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체 없이 우리 민족이 있는 여러 곳에 사람을 보내 파리강화회의 소식을 전하며 독립운동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에는 장덕수를 급파했고, 여운형 선생 자신은 만주와 연해주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3.1운동은 일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우리의 독립 의지를 널리 밝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도 도쿄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게 됐고요, 그 소식을 전하러 국내에 들어오게 된 것이죠.

3.1운동에서 여운형 선생의 이름이 잘 나오지 않지만 그 내력을 살펴보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볼 분 역시 중요한 분입니다. 어쩌면 3.1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바로 손병희 선생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손병희 선생의 집터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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