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6코스 3.1운동 길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민주주의의 시작 3.1운동 이야기

(안내) 배우 박형준
(배역) 송계백(일본의 유학생 독립운동을 국내에 전한 대학생)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3.1운동이 시작된 데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탑골공원은 1899년경에 생겨났습니다. 공원이 된 장소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원래 절이 있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세조 때 세운 절인 원각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을 세웠는데요, 흰빛이 난다고 해서 ‘백탑’이라고도 부르는 원각사지 석탑입니다.

원각사가 제 모습을 잃기 시작한 것은 연산군 때입니다. 원각사에 음악을 담당하는 관청인 장악원을 설치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전국에서 모은 기생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고약한 일입니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이 자리에 관청이 들어섰는데요, 주변 관공서를 수리 할 때 여기 건물의 부재를 뜯어다가 쓰면서 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흰빛이 도는 대리석으로 만든 10층 석탑은 당시에도 귀하고 눈에 띄는 것이어서 한양의 명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유명한 시인들이 이 일대에 모였을 때, 이들을 ‘백탑시파’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는데, 대한제국 시기에 공원으로 꾸며진 겁니다. 당시 세관업무를 담당하던 영국인 브라운이 건의를 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라고도 말하는데요,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최초의 공원은 인천 각국 조계지, 곧 외국인 거주 공간 뒤에 있는 ‘각국공원’으로 나중에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곳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최초는 아니지만, 한양 최초의 공원이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00년경 이곳에 특별한 건물이 들어섭니다. 바로 팔각정입니다. 팔각형은 원형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요, 이러한 건물은 왕이나 황제의 권위를 담은 건축물입니다. 예를 들어 1899년에 들어선 원구단의 황궁우 역시 팔각형인데요, 황제의 권위를 드러낸 건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팔각정은 고종이 백성들에게 내린 선물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대한제국 군악대를 이끌던 프란츠 에케르트가 황제를 상징하는 국가를 작곡했는데요, 군악대가 이 팔각정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공원이 생겼다’는 것은 백성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곳이 생겨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 이 공원은 황제, 나라에서 만든 곳이지만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전과 다른 성격을 가진 곳이 되어갔습니다.

1919년 3월 1일,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입니다. 황해도에서 온 정재용 선생이 읽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독립국’과 ‘자주민’의 의미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나라를 빼앗길 당시에는 황제가 있었지만 나라를 되찾을 때에는 황제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며 저처럼 ‘나라의 주인이 나’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는 3.1운동이 진행되며 조금 더 명확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3.1운동 과정에서 황실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된 독립운동은 처음 민족대표가 촉발한 후, 학생들과 선각자들이 움직였고, 곧 온 조선인이 일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주민이란, 앞에서 살펴본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민, 또는 시민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나라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정신과 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제도를 떠 올리게 됩니다. 단군 이래 늘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던 왕’을 배제한 정치제도인 공화정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은,(한숨 쉬고)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헌법의 기초에 해당하는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선언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이제 백성은 시민으로, 왕정은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독립운동은 일제를 몰아내는 것을 1차 목표로 했지만 최종 목표는 민주공화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1919년 이후 광복까지 이르는 기간에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다면 두 개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3.1운동의 출발점이 된 장소가 탑골공원이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는데요, 황제의 시간에서 시민의 시간으로 바뀐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탑골공원을 보면 더욱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 탑골공원에는 조선 세조의 정성이 담긴 원각사의 흔적, 그리고 황제의 의미가 담긴 팔각정, 마지막으로 이곳을 시민의 공간으로 바꾼 3.1운동의 흔적이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공간에 시간이 담긴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독립운동이 갖는 미래를 향한 의미,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뀐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 가슴도 뜨거워집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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