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천도교 중앙총부 터

5코스 개화를 향한 길
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안내) 배우 서지석
(배역) 홍영식(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찾아오는 길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아마도 오가는 행인들로 거리 전체가 북적거렸을 것입니다. 외국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한국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제가 살던 시절에는 ‘개화’라는 이름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하,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네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종로모던길, 개화를 향한 길을 계속 안내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조금 시끌벅적할 것입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뿐만 아니라, 안내판 건너,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나 함성도 들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덕성여자중학교 앞입니다.

안내판을 보면 이곳에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천도교. 제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그러나 아주 모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 있던 때에는 동학이라고 했는데,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동학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개화의 방향, 근대로 나아가는 길이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단기적으로는 일본이 나아갔던 길이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도 근대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 것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동학이었습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한 동학의 가르침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갑신정변 당시 문벌 타파 등을 내세웠지만 동학의 주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동학의 이런 가르침에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동학이 갑자기 널리 퍼지자, 나라에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괴수로 몰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동학의 흐름은 최시형으로 이어지고 동학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동학의 세력과 영향력이 날로 커지자 문제도 생겨났습니다. 그 안에 친일의 기운이 스며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주였던 손병희는 친일파를 쫓아내고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새롭게 이름을 바꾼 천도교는 민족종교라는 인상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교인이 입는 옷에 고름을 없애고 단추를 단 것 같은 작은 일은 물론이고요, 교당 건물을 서양식으로 짓는 것과 같은 큰 공사도 해냈는데요, 그런 거창한 중앙대교당을 짓기 전 바로 이곳에 본부, 곧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19년, 천도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획합니다. 기독교, 불교와 함께 독립운동을 펼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삼일운동을 모두가 참여한 민족운동으로 이끄는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그리고 1921년, 새 교당을 지은 천도교는 경운동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자, 이제 종로모던길, 다음 장소로 가겠습니다.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 중간에 왼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습니다. 그 앞에 종친부 건물이 있으니 잠시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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