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국 번사창

5코스 개화를 향한 길
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안내) 배우 서지석
(배역) 홍영식(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한국금융연수원 안에 있는 기기국 번사창 건물은 개화의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벽돌로 쌓은 벽체의 모습이며 이중으로 된 지붕의 모습이 상당히 특이해 보입니다.

먼저 기기국에 대해 말씀을 드리죠. 기기국의 시작은 1880년에 생긴 통리기무아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은 개항 이후 변화하는 국내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특별 관청입니다. 통리기무아문은 12개 부문의 일을 관장했는데요, 그 가운데 무기와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기계와 군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개화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부국강병이었으니, 무기 관련 일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의 유학단인 영선사를 청으로 파견했습니다. 1881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청의 비협조와 지식의 격차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2년 뒤인 1883년, 기기국이 옛 화약도감 자리에 설치되었습니다. 기기국은 무기를 제조하는 관청이었습니다. 그리고 기기국 안에 주물을 부어 무기를 만드는 공장인 번사창을 지었습니다. 번사창은 중국 기술자를 불러 만들었지만, 건물의 골격에 한국 건축의 요소가 들어있는 걸 보면, 우리 목수도 같이 참여한 것 같습니다.

번사창의 설립 목표는 화승총을 대신할 새로운 총을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의 비협조, 조선의 재정 문제로 총기를 수리하는 것으로 방향이 수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번사창은 원래 목적과는 달라졌지만 조선의 개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다시 생각해보면, 개화란 어느 하나가 외국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강한 군대를 기르기 위해서는, 무기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능력, 이를 지원할 행정 체계, 무기 제작 기술자 양성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당하는 행정 책임자, 혹은 정치가의 뚝심과 결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정치의 일관성은 없었습니다.

만일 개화를 추진하던 우리에게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적 사회적 여유가 있었다면, 우리 손으로 뭔가 성과를 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쉽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우리가 개화를 향해 노심초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산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만, 번사창을 창고 정도로 인식했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창고와 공장은 큰 차이가 있는데 말입니다.

자, 이제 개화를 향한 길, 마지막 장소로 가겠습니다. 지금 갈 곳은 북촌 한옥마을입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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