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한옥

5코스 개화를 향한 길
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안내) 배우 서지석
(배역) 홍영식(젊은 개화파, 갑신정변의 주역)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북촌에 살긴 했지만, 삼청동에서 넘어오는 길은 늘 어렵습니다. 골목이 꼬불꼬불 복잡해서 가끔 저도 미아가 되곤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 눈앞에 한옥이 줄지어 선 골목이 길게 뻗어있고, 남쪽으로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면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비슷해 보이는 두 골목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데요, 큰 상관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이곳까지 오시게 한 것은 근대 한옥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제가 살던 시절에는 한옥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한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옥이란 낱말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에는 그냥 집이라고 했습니다. 큰 집, 작은 집, 오래된 집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서양식, 일본식 집이 들어오면서 구분할 필요가 생겼고, 한옥이란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요, 이 한옥이란 말이 참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이 살던 전통 가옥,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 기준이 되는 시기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한옥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만큼 변형이 될 때까지를 한옥으로 보느냐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까다롭습니다만, 대체로 바닥에 온돌이 있고 마루가 있고, 목조 구조로 되어 있으면 한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옥은 근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는데요,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한옥이 바로 그렇습니다. 한옥이라고 하면, 보통 사랑채와 안채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요, 북촌 한옥은 미음자 모양으로 지어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모양의 집이 사이좋게 죽 늘어서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한옥의 품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지만, 여기에도 내력이 있습니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나서 북촌에 살던 양반들이 하나, 둘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 규모의 한옥이라서 들어와 살 한국인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옥을 일본인이 매입하면, 몽땅 허물고 일본식으로 새 집을 지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때 특별한 생각을 가진 건축업자가 나타났습니다. 건양사 사장, 정세권 선생입니다. 넓은 한옥 부지에 여러 채의 한옥을 짓는데, 비슷한 모양으로 지어 건축비를 낮추면, 한국인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습니다. 자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할부로 집을 살 수 방안도 제공했습니다.

정세권 선생의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대박이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한옥 등장으로 북촌은 여전히 한국인이 거주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북촌에 일본인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면, 지금처럼 이 자리에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얘기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옛 전통을 이으면서도 개화의 모습을 찾아낸 것 중 하나가 바로 북촌 한옥입니다.

자, 오늘 저와 함께 종로모던길, 개화를 향한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개화의 보금자리와도 같았던 헌법재판소를 시작으로 북촌과 삼청동 일대를 둘러보았는데요, 어떤 곳에서는 아쉬움이, 어떤 곳에서는 한탄이, 또 어떤 곳에서는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개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사람들의 꿈도 발견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디였는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셨다면, 저는 나름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하겠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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