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코스 모더니스트,문학의 길
문학의 향기를 통해 만나는 종로의 문학가 이야기

(안내) 배우 배해선
(배역) 염인영(근대문학을 공부하는 여성)

거대한 빌딩 아래 약간의 공간이 있는 이곳은 원래 골목이었습니다. 피맛골이라 부른 길이었죠. 녹두전이며 해장국, 낙지요리 덕분에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곳이었고요. 문학, 예술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도, 모처럼 분위기를 내려는 더벅머리 대학생도 찾던 곳이었습니다. 서울, 그리고 종로에서 8~90년대를 지냈던 사람이라면 피맛골에 대한 기억, 한두 가지는 있지 않을까요?

아, 피맛골에 대해 오해가 있는 부분도 있긴 한데요, 바로 잡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피마, 곧 말을 피한다는 의미로, 피맛골을 조선시대에 평민이 말을 탄 고관을 피하던 길로 알고 계신 듯합니다. 그러나 본디 피마는 ‘말을 탄 고관을 피해 낮은 관직의 하관이 말을 돌려 피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그 이유는요, 하관이 말을 타고 가다 고관을 만나면 내려서 예를 올려야 하는데, 그럴 경우 공무가 늦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이 낮은 관리가 고관이 탄 말을 피해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법으로 허락한 것이었죠.

그러니까 피맛골은 원래 낮은 관리가 다니는 길이었는데요, 이후 자연스럽게 상인이나 평민들도 이용하면서 나름의 상권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자료를 보면, 이미 18세기 지도에 피맛골이 보입니다. 다만 한양의 큰길인 종로 북쪽의 피맛골은 광화문 네거리 근처에서 동대문 앞까지 죽 이어져 있지만, 종로 남쪽의 피맛골은 종각 근처에서 한번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기 때문에, 피맛골 모습이 잘 남아있는 곳은 역시 종로의 북쪽 피맛골입니다.

일제시기에는 피맛골 일부를 피마동으로 부르기도 했는데요, 조선인 거주지라는 이유로 종로 일대를 확장도 개발도 하지 않아서 피맛골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광복 후에, 종로 도로가 확장될 때, 종로 북쪽이 기준이 되는 바람에 종로 남쪽 피맛골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북쪽에도 대규모 건물이 들어서면서 오늘날 피맛골은 그 이름과 명맥만 일부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럼 이제 피맛골에 있던 문학가의 아지트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청진동 300번지에 있던 〈시인통신〉이 바로 그곳입니다. 카페와 술집을 섞어놓은 듯한 곳으로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가 찾았습니다. 몇 번의 이전 끝에 아쉽게도 2008년 문을 닫았지요.

종로를 오가던 행인들이 편리함을 위해 다녔던 종로의 옆길, 피맛골은 종로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잠시 피맛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쉬어가시는 건 어떨까요? 맛있는 음식을 드셔도 좋고, 혹은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져 보셔도 좋지만, 직접 눈으로 피맛골에서 일어난 일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공평 도시유적전시관입니다. 전시관의 이름이 조금 긴데요, 공평은 동네 이름입니다. 그리고 도시의 유적을 보여주는 전시관이라고 생각하시면 기억하시기 쉬울 겁니다.이 전시관은 현대식 빌딩 지하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빌딩 건축 과정에서 나온 유적을 그대로 살려서 전시했기 때문인데요. 공평 도시유적전시관에 가면 네 개의 지층을 구분하고 있는데요, 0.6미터에서 1,5미터 지하는 일제시기와 19세기, 1.5미터~2.4미터 지하는 18~19세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단순화하면 서울의 땅을 1미터씩 파내려 갈 때마다 100년 전 역사를 만나게 되는 거죠. 지금 공평 도시유적전시관에는 가장 흔적이 잘 남아있는 16~17세기 모습을 중심으로 발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유적 사이의 관람로는 400년 전 골목이기도 합니다. 피맛골의 옛 분위기를 상상하며 걸어보시면 어떨까요?

자! 다음은 김수영 시인의 생가 터가 있는 곳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생가 터를 알려주는 표석은 탑골공원 건너편,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모여 있는 곳 옆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