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3코스 이방인의 은행나무 길
근대 우리나라에 살았던 외국인 이야기

(안내) 성우 김보민
(배역) 메리 린리테일러(딜쿠샤의 주인/남편 알버트테일러)

먼저 저기 은행나무를 보시죠. 건물들 사이 비좁은 자리에 서 있는 저 은행나무는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켰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였던 권율 장군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 동네 이름에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행촌동’은 은행동과 신촌동이 합쳐진 것인데 은행동의 주인공이 바로 이 은행나무입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 이 나무를 만났던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남편과 한양 성곽길을 한 바퀴를 돌던 날, 인왕산의 성곽을 따라 내려오던 길에 이 나무를 보았답니다.

30여 미터의 키에 두 아름이 훌쩍 넘는 그 거대한 나무는 처음부터 제 마음을 빼앗았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이 나무를 ‘우리 나무’라고 불렀어요. 언젠간 꼭 이곳에 우리 집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그 후로 저는 수시로 은행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서울을 내려다보곤 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3년, 그렇게 바라던 제 꿈이 이루어졌답니다. 바로 여러분 뒤로 보이는 빨간 벽돌집, ‘딜쿠샤’입니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인도를 방문했을 때, 폐허가 된 옛 궁전을 보고는 언젠가 집을 짓는다면 꼭 ‘딜쿠샤’라고 이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집이 여기 조선에 세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지요.

우리 집터와 마주 보는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을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딜쿠샤는 당시 조선신궁 외에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큰 집이었죠.

여러분이 제 마음을 이해하시려면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마음속으로 하나씩 지우셔야 해요. 그러고 나면 아마 오래된 성벽과 언덕, 건너편에 보이는 남산과 인왕산 정도가 남을 겁니다. 아, 은행나무도 듬직하게 저 앞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죠.

조금이나마 딜쿠샤가 처음 지어졌을 때 분위기가 느껴지시나요. 꽤 멋진 곳이었답니다. 하하.

최근에 여러 사람이 노력한 덕분에 딜쿠샤 내부도 제가 살던 시절 모습이 되었죠. 그 가운데에는 이곳에서 만난 우직하고 선량했던 조선 사람들의 모습도 제가 그린 그림 속에 남아 있죠. 그리고 저와 알버트 그리고 조선을 연결해준 호박목걸이도 꼭 찾아보세요.

알버트는 조선 사람들 역시 호박을 소중히 생각한다며 커다란 호박 목걸이로 마음을 전했답니다.

이렇게 딜쿠샤가 옛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딜쿠샤란 글자가 있는 정초석 덕분입니다. 노인이 다 된 제 아들 브루스가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을 지닌 집을 찾게 된 것도 정초석이 있어서 가능했죠.

사실 브루스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출산을 위해 서울역 근처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죠. 미국 A.P 통신의 통신원이었던 알버트는 3.1운동 전날, 미국 고종 황제의 국장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스럽게도 병원 안팎으로 많은 일본 군인들이 보이던 2월 28일, 아들 브루스가 태어났습니다. 병실 밖의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담당 간호사는 종이 뭉치를 제 침대 밑에 집어넣고 사라졌답니다. 종이 뭉치의 존재는 알버트가 돌아와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문서였습니다. ‘독립선언서’, 알버트가 브루스를 처음 안았을 때보다 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문서를 보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네요. 사실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요.

그날 밤 시동생 빌은 독립선언서와 알버트가 쓴 기사를 구두 뒤축에 감추고 도쿄로 건너갔습니다. 전신으로 A.P 통신에 보내기 위해서였죠. 이렇게 한국의 독립을 선언했던 3.1 운동 기사를 외국으로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알버트는 한동안 A.P 통신원으로 고종의 국장뿐 아니라 3.1 운동 전개 소식을 꾸준히 전했습니다. 그리고 4월에는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지요.

총칼을 앞세운 일본군 앞에서 맨손으로 만세를 외치며 독립의 의지를 내보인 한국인들의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었지요.

그런 한국인을 보면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오래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 딜쿠샤에 대한 말씀은 대략 드린 것 같은데요, 잠시 딜쿠샤 안을 들여다볼까요? 보시다시피 당시 모습을 재현했는데요, 아담한 박물관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흔적을 찬찬히 살펴보신 다음에 장소를 옮길게요.

딜쿠샤와 은행나무 사잇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담한 빨간 벽돌집을 만날 수 있는데요, 그곳이 다음 목적지입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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