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기상박물관


3코스 이방인의 은행나무 길
근대 우리나라에 살았던 외국인 이야기

(안내) 성우 김보민
(배역) 메리 린리테일러(딜쿠샤의 주인/남편 알버트테일러)

와,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진짜 많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올라온 보람이 있는 곳이죠. 낡은 건물에 덮인 시간의 무게, 그리고 제법 널찍한 마당과 몇 개의 기상관측기구.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은 국립기상박물관입니다. 지금은 높은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100여 년 전 이곳에 서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답니다. 1932년의 일입니다. 지대가 높은 이곳에 기상 관측을 위한 새로운 건물을 지었죠. 우리 눈앞에 있는 건물입니다.

그래서 1933년 1월 1일부터 이곳을 서울 날씨의 기준으로 삼았어요. 박물관 야외 뜰은 여전히 서울 날씨의 측정 기준이 된다고 하네요. 마당의 단풍나무가 120살 정도라고 하니, 제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도 있었을 거 같아요. 물론 그때는 작은 나무라서 눈에 잘 띄지는 않았을 거고요.

아, 국립기상박물관 건물은 1930년대 유행했던 건물 양식이라고 해요. 최대한 실용성에 목적을 두고 만들었다고 하죠.

여기는 말 그대로 박물관이어서 실내에는 몇 개의 전시실과 체험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자랑하는 유물도 있죠. 바로 세계 최초로 강우량을 쟀던 측우기입니다. 제가 살던 서양이 여러 면에서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측우기는 서양보다 200여 년이나 앞섰다고 해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측우기를 처음 시험한 날인 세종 23년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기념하고 있어요.

그런데요, 많이 만들었던 측우기 가운데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지금 남아있는 측우기는 단 1개, 바로 박물관에 전시된 측우기입니다. 이 측우기는 1837년 제작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로 금영측우기라고 해요. 1911년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귀하고 유명한 것이었죠.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측우기를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일본 기상학자인 와다 유지가 무단으로 일본으로 가져갔기 때문이죠. 다행히 문화재 반환 협상으로 1971년에 어렵게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해요.

이 밖에도 측우기를 설치했던 측우대 역시 귀한 유물이라고 합니다. 잠시 박물관을 살펴보신 뒤에 다음 장소로 옮겨 가겠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경사로를 따라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강북 삼성 병원이 보입니다. 병원 안쪽의 차도를 따라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1930년대 풍의 건물, 경교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곳이지요.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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