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동 계곡

2코스 독립과 매국의 길
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안내) 가수 송민경
(배역) 김경화(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이곳은 인왕산의 계곡 가운데 한 곳인 수성동 계곡입니다.
인왕산 동쪽 자락,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 사이로 물이 흐르는 이곳은요, 크고 맑은 물소리로 유명했다고 하죠. 그래서 이름도 수성동, 곧 물소리가 크게 나는 동네라고 합니다. 이 일대 변화도 엄청났죠. 그 이야기는 잠시 뒤에 말씀드릴게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이 있는데요, 윤동주 시인은 아침이면 집을 나서 인왕산 중턱까지 걸어올라 수성동 계곡의 물로 세수를 하고 연희전문학교로 등교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 동네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사실 수성동 계곡에 일찌감치 자리 잡은 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치를 그냥 둘 리가 없으니까요. 그 주인공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입니다. 안평대군은 경복궁과 가깝고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 ‘비해당’을 지어 머물렀습니다. 풍류를 즐겼던 안평대군은 한편으로는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했지요. 그러나 여러 사람과 사귄 것이 문제가 되었고요, 결국은 형이며 나중에 세조가 된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비운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안평대군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명성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고요, 그 자취를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계곡 중간에 통돌을 깎아서 만든 돌다리, 바로 ‘기린교’입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인왕산의 명승지를 그린 ‘장동팔경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다리입니다. 200년 전 정선의 그림 속에도, 제가 찾았던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참 고맙네요.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수성동의 물길은 시원했어요. 인왕산 옥류동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수성동 계곡의 물과 만나 옥류동천을 이루었고요, 아래로 흘러 백운동천, 누각동천과 만나 지금의 청계천으로 흘러 내려갔습니다. 아, 여기에서 동천은 ‘마을의 물길’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인왕산 자락을 흐르던 물길은 이제 마을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네요. 조금씩 콘크리트로 물길을 덮어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아, 수성동 계곡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했어요. 계곡을 바라보고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의 잔해가 보입니다. 1971년 지어진 옥인동 시범아파트의 흔적인데요, 무려 9개 동의 대단지였다고 하네요. 2008년 아파트는 철거되고 계곡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어요. 자연의 모습을 가리는 것도, 자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도 발전이라고 하니, 세상의 가치 평가라는 것이 무상하기도 묘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수성동 계곡을 떠나야겠네요. 저희가 갈 곳은 수성동 계곡 아래로 난 길입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길 오른편에 ‘윤동주 하숙집 터’라고 적힌 표지를 만날 수 있는데요, 그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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