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코스 독립과 매국의 길
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안내) 가수 송민경
(배역) 김경화(배화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 중심인물)
아담한 2층 벽돌집이 보이는데요. 2013년 개관한 박노수 미술관입니다. 박노수 화백은 1973년 이 집을 사서 40여 년 간 살았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집과 작품을 종로구에 기증해 지금은 종로 구립미술관이 되었죠. 가슴이 훈훈해지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집의 내력을 살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집니다.
이 집이 지어진 것은 1937년이었습니다. 윤덕영이란 인물이 이 동네에 여러 채의 집을 지었는데요, 이 집은 딸과 사위를 위해 지은 서양식 집이었다고 하는군요.
윤덕영, 저는 이 사람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립니다.
매국노, 친일파라 하면 ‘을사오적’, 그중에서도 이완용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윤덕영도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사실 나라를 팔아넘긴 ‘경술국적’의 한 명이기도 하죠. 그의 집이 제가 다니던 학교인 배화여학교 옆에 있었다는 게 화가 날 정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요, 윤덕영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그러니까 황실의 일원이라는 점입니다. 1906년에 동생 윤택영의 딸이 황후 자리에 오르자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 인물이죠. 윤덕영의 권세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외척의 일원으로 그 누구보다 친일에 앞장서서 일본 정부의 훈장을 받았고요, 이토 히로부미가 후원하는 대동학회의 회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토 사후에는요, 이른바 ‘관민추도회’를 발의하고 이토를 추도하는 제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나라를 빼앗길 때 누구보다도 앞장섰습니다. 그런 공을 인정받아 일본으로부터 후작의 작위와 함께 무려 46만 원의 은사금을 받았죠.
나라를 팔아먹은 돈으로 옥류동천의 위쪽, 옥인동 일대의 땅을 사들였는데요, 옥인동 땅의 절반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지은 화려한 양식 주택이 한양의 아방궁으로 불린 ‘벽수산장’입니다. 지하와 다락을 갖춘 2층 벽돌 건물로 외국에서 수입한 자재로만 지었는데요, 거실 천장에는 금붕어를 기르는 수족관이 있어서 금붕어 집이라 불리기도 했지요. 윤덕영의 친일매국 행각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그 집을 바라보며 누구 하나 욕을 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매국노가 판치는 것을 보면서 저 같은 어린 학생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 저는 비록 큰 힘은 없었지만 목청껏 독립을 위한 만세를 외쳤고요, 많은 사람의 굳은 뜻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1919년 3월의 함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저 윤덕영도 비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벽수산장을 ‘홍만자회’라는 종교단체의 시설로 쓰도록 하고, 자기는 그 안에 한옥을 지어 머물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옆에 여러 채의 집을 지었는데요, 애첩을 위해 지은 집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그리고 벽수산장 아래쪽, 옥류동천 가까운 곳에 딸에게 지어준 집이 바로 지금의 박노수 미술관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독립운동의 자취만큼이나 친일의 흔적도 중요해 보입니다.
사실 윤덕영이 집을 지은 이곳은요, 인왕산 아래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좋아서 예로부터 안동 김씨, 의령 남씨 등 권력가들이 터를 잡고 자연을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200여 년 전에는 중인들이 이곳에서 시모임인 ‘시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유명했던 ‘송석원 시사’는 그들의 모임을 김홍도, 이인상 같은 화원의 그림 속에 남겼고요, 추사 김정희에게 부탁해 시사 이름 ‘송석원’을 암벽에 새기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송석원’이라는 글자를 새긴 암벽이 있는 곳이 미술관 근처라고 합니다.
한양의 아방궁으로 불리던 벽수산장은요, 광복이후 1950년 UN에 설립된 한국 문제 전담기구 언커크(UNCURK) 본부로 사용했고, 1966년 화재가 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완전히 철거되었습니다. 비록 건물을 볼 수는 없지만,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배신한 친일의 역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길을 걸어보겠습니다.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통인시장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