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춘대 표석

1코스 1.21길
서울의 중심 종로에 큰 변화를 일으킨 1968년 1.21 사건 뒷 이야기

(안내) 배우 오만석
(배역) 최규식경무관(前 종로경찰서장)

이 표석은 이 일대가 탕춘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탕춘대 자리는 현 세검정초등학교 일대로 신라때부터 장의사라는 절이 있었고 조선 초기만해도 관리들이 사가독서하는 곳이기도 했으나, 연산군이 놀이터로 삼았던 곳인데요, 넓고 평평한 곳이어서 이러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연산군은 이곳에서 궁녀들과 음란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결국 폐위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영조는 이곳으로 총융청을 이전한 뒤 탕춘대란 이름을 연융대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은 한양도성 방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며 왕이 피란을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양의 백성들과 함께 싸울 공간으로 북한산에 이전에 있던 토성을 석성으로 건설한 겁니다. 이때 북한산성의 군사들이 먹을 군량 창고를 산성 아래쪽에 지었으니 그 이름이 ‘평창’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평창동의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평창’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니 이를 지켜야 할 성이 다시 필요해졌습니다. 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이 떨어져 있다는 점도 고민이었죠. 그래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새로운 성을 건설했는데요, 바로 이곳 탕춘대의 이름을 딴 탕춘대성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1.21 사건을 겪으면서도 이 일대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또 종로 북쪽, 곧 지금의 백악 일대는 교통이 불편해 외부의 지원도 어려웠죠. 그래서 백악과 인왕산 일대에 도로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거지요. 청와대 일대를 지키기 위해 무조건 통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길이 바로 ‘북악스카이웨이’라 불렀던 북악산길입니다. 아, 북악의 원래 이름은 백악입니다. 하하.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에서 시작해 백악, 그리고 정릉과 미아리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건설하면서 자하문에서 사직단으로 연결되는 인왕스카이웨이, 곧 지금의 인왕산길도 닦았습니다. 서울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길이어서 북악스카이웨이 중간에 팔각정도 지어서 서울 사람들에게는 생각지도 못 했던 뜻밖의 관광 코스가 생긴 겁니다. 더불어서 좁고 구불구불했던 세검정로도 크게 확장하고 평창동 일대를 개발했습니다.

당시 이 일대는 해가 지면 인적이 끊기는 곳이었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자, 다음 장소는 가깝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자그마한 공원이 있는데요, 바로 조지서가 있던 곳입니다. 조그마한 표석이 있습니다.

@등록기관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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